12月.
1.
오늘, 눈이 내린다.
공중에서 바람에 휩쓸리며 여기 저기 넘나들다가 휙 날라가 버린다.공중 저쪽에로인듯, 젖어가는 땅 으로인듯.
12月,돈이 없어 허기진 사람들은 집으로, 셋방으로 찾아들어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몇몇 돈이 되는 일을 찾아 추운 저녁무렵, 인천으로 가고, 안양으로 가고, 저 남쪽 군산항으로도 가고.
다들 조용히 가고있구나.
눈이 내린다. 오늘, 12월.
나홀로 휩쓸리는 눈을 쳐다보고 있구나.
나도 어느 한 군데로 휩쓸려가며 벌레가 휴식처를 찾아 땅 속으로 파고 들듯이, 껍질속 긴 잠 속에 휴식하고 싶다.
다들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요만큼은 남을 속이고, 저만큼은 상술로 손님을 유혹하고, 또 누군가의 피눈물을 댓가로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다들 마다하는 궂은 일에 손을 담그고 머리를 쓰고, 땀에 절은 검은 기름에 절은 닦지도 못하게시리 손조차도 더러워져 있는.... 누군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던가. 눈이 내린다.이리저리 휩쓸리면서도 마냥 내린다.어디 갈 곳도 없는데 내린다. 땅위에 앉자마자 녹아버려도 또 그 위에 내리고. 공중에는 또 눈이 날린다.
살아간다는 일이 어디 한 군데 기대일 곳조차 없는 것인데....
80年을 살다가 가진것 다 놓고 저세상으로 떠나가는 것인데....
나는 무엇을 바라 이 저녁 한 자 한 자 글을 적고 있는가?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는데....
누구를 사랑할 것도 없는데....
理由도 없이,
아무 목적도 없이,
갈 곳도 없이,
쉴 곳도 없이,
땅에, 땅 속에, 자취없이 녹아서 땅속에 스며드는 눈.
땅을 파고 스며드는 눈.
계절의 길목에서 나뭇잎사귀가 팔랑거릴때 시간이 들락거리고,
아,이 12月이 가면,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공중에서 찬바람에 휩쓸려가는 것들 - 바람, 시간, 나뭇잎사귀, 눈, 눈발. 나, 理由, 목적,또....
2.
바닷가,
저녁 무렵이고, 밀물이 가득 눈동자 위로 차오르는 만조.
밀려 들어온 바닷물들이 눈동자 위에 조용히 다가온다, 수면처럼. 침묵처럼....
만조의 바닷물은 참 조용하고 깊다.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싶게 만든다. 生을 다 끝낸 사람처럼, 아무 욕심도 없는 사람처럼,침묵 속에서 바닷물만을 바라보게 만든다.
괜찮아, 괜찮아,다 잊어버려, 잊어버려, 인생의 알싸한 꿈들은 다 놓아버리라고 ,원래 다 없는 것이라고
글씨를 썼다가 지워버리고, 썼다가 지워버리고
바닷물은 그 깊이만을 가지고, 그 침묵만을 가지고, 그 無만을 가지고,
그 깊이,침묵,無마저 놓아버리고 잊어버리고, 가슴 속에 가득히 흐른다. 시간에 다가온다.
쓸쓸한 사람들의 눈동자 위에 다가와서 그 눈을 감겨준다.수면처럼, 침묵처럼....
12월
- 이외수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 내린다
닫혀 있는 거리
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폭설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
지워지고 있다
12월
황지우
12월의 저녁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 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12월의 숲
_ 황지우 _
눈맞은 겨울 나무 숲에 가보았다
더 들어오지 말라는 듯
벗은 몸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목숨들로 連帶해 있었다
눈 맞는 겨울나무 숲은
木炭畵 가루 희뿌연 겨울나무 숲은
聖者의 길을 잠시 보여주며
이 길은 없는 길이라고
사랑은 이렇게 대책 없는 것이라고
다만 서로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듯
형식적 경계가 안 보이게 눈 내리고
겨울 나무 숲은 내가 돌아갈 길을
온통 감추어 버리고
인근 산의 積雪量을 엿보는 겨울나무 숲
나는 내내,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12월의 아침 시간
_ 헤세 _
비는 엷게 베일 드리우고, 굼뜬 눈송이들이
잿빛 베일에 섞여 짜여
위쪽 가지와 철조망에 드리워져 있다
아래쪽 창유리에 오그리고 앉아 있다
서늘한 물기 속에서 녹아 유영하며
축축한 땅 냄새에
뭔가 엷은 것, 아무 것도 아닌 것 어렴풋한 것을 준다
또 물방울들의 졸졸거림에 머뭇거림의
몸짓을 주고, 대낮의 빛에게는
마음 상하게 하는 언짢은 창백함을 준다
아침에 눈먼 창유리들의 열 가운데서
장밋빛으로 따뜻한 흐린 광채가 어렴풋이 밝아 온다
외롭게 아직 창문 하나 어둠의 조명을 받아
간호원 하나 온다 그녀는 눈雪으로
눈眼을 축인다, 한동안
서서 응시한다 방으로 되돌아간다
촛불이 꺼진다 잿빛의
빛바랜 날 속에서 장벽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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