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나무, 잎사귀, 장미, 민들레, 신경림 갈대

인천 주안 자동차 2018. 6. 5. 19:57



    나무의 詩

                                                         류시화.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 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해질녘 나무의 노래를
나무 위에 날아와 앉는
세상의 모든 새를
너 자신처럼 느껴야지
네가 외로울 때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너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리하여 외로움이 너의 그림자만큼 길어질 때
해질녘 너의 그림자가 그 나무에 가 닿을 때
넌 비로소 나무에 대해 말해야지
그러나 언제나 삶에 대해 말해야지
그 어떤 것도 말고




-나무, 잎사귀, 장미, 민들레에 관련된 좋은 시가 보이지 않는다. 비현실적이거나, 감상적이거나, 인생이 보이지 않거나, 자기 자신 속에 매몰돼 있고 그것을 감상적으로 표현하거나. 류시화 시인의 시 말고는 옮기고 싶은 것이 없다. 김신용 시인의 "부빈다는 것" 정도가 인생과 너그러움과 자연이 잘 드러나 있을 뿐이다.






   부빈다는 것.

 

                                        

안개가
나뭇잎에 몸을 부빈다
몸을 부빌 때마다 나뭇잎에는 물방울들이 맺힌다
맺힌 물방울들은 후두둑 후둑 제 무게에 겨운 비 듣는 소리를 낸다
안개는, 자신이 지운 모든 것들에게 그렇게 스며들어
물방울을 맺히게 하고, 맺힌 물방울들은
이슬처럼, 나뭇잎들의 얼굴을 맑게 씻어준다
안개와
나뭇잎이 연주하는, 그 물방울들의 和音,
강아지가
제 어미의 털 속에 얼굴을 부비듯
무게가
무게에게 몸 포개는, 그 불가항력의
표면장력,
나뭇잎에 물방울이 맺힐 때마다, 제 몸 풀어 자신을 지우는
안개,
그 안개의 粒子들

부빈다는 것

이렇게 무게가 무게에게 짐 지우지 않는 것

나무의 그늘이 나무에게 등 기대지 않듯이

그 그늘이 그림자들을 쉬게 하듯이



                              /김신용.





      숯불의 시.        



군불을 지피고 남은 숯불에 감자를 묻는다
숯불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는 것 같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온기로 몇 알의 감자라도 익힌다면
사그라져 남는 재도 따뜻하리라,고 생각하는
눈빛 같다. 수확이 끝난 빈 밭에 몇 줌의 감자를 남겨두는
경자(耕者)의 마음도 저와 같을까?
묻힌 것에게 체온 다 주고 사그라지고 있는 모습이
삶이 경전(耕田)이며 곧 경전(經典)이라고 말하는 눈빛 같기도 하다
추수가 끝난 빈 밭에서 주워온 몇 알의 감자,
숯불 속에서 익고 있는 그 뜨거운 속살이 심서(心書) 같아
마음의 빈 밭에라도 씨앗 하나 묻어둔 적 없는
내 삶의 경작지(耕作地)가 너무 황량해
한 끼의 공복을 메울, 그 묵언의 재 속에 남겨진
사유 앞에 내민 내 텅 빈 두 손이 시리다
숯불 꺼지고 나면, 또 어둠의 재 속에 묻혀버릴 이 저녁



                                /김신용.





      장미




5월의 장미는 피었는데,
5월의 장미는 붉은데,
재개발로 빈 집 담을 너머 5월의 장미는 붉은데,
장미는 계절의 여왕이라고 누가 말했나,
재개발로 비워진 길에 지려있는 똥, 오줌 , 위에 삼삼오오 모여든 똥파리떼
똥파리떼가 몰려들어 음모와 협잡으로 비워진 공간에서 
이 다음 음모와 협잡을 모의하고 있나,
비워진 공간에 장미처럼 붉어진 협잡과 음모의 세상에 대해 토론하고 있나,
늙은이는 살던 자기집에서 시세의 절반의 절반 밖에 안되는 보상금을 받고 쫓겨나
죽을 때까지 자기 집을 마련 못하고, 
세상의 가에서 숙명인양 걸어다니네,
걸어가는 걸음걸음을 숙명인양 피척거리며, 지팡이로 세상의 가를 짚고 있네.
피어나는 빈 공간엔 햇빛이 지난 꿈인양 증발하고 있는데, 기억이 사라지고 있는가,시간들의 간격은
어두운 밤하늘을 너머 흘러가고 있는데 무엇이 꿈을 지속하고 있는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꿈도 시각들도 허망했는가, 틈틈히 숨가쁜 시간들도 지나쳐 가면 그뿐이었던가,

사람들이 떠난 빈 공간엔 햇빛들도 뿌연 연기처럼 무기력한데.

그 공간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가라앉아가는 혀처럼

내뱉지 못한 말들을 떠올리고 있나, 






    갈대

   

                                                                 신경림

 

   

언제부터인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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