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독일 시인
눈 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에
모든 봉오리마다 꽃으로 피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오월에
나의 마음 속에
사랑은 꽃피었네.
모든 새들이 노래를 터뜨리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오월에
그리운 마음 아쉬운 마음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었네,
어찌하여 나의 눈동자는 흐리는가
하이네
무슨 일일까,
내 외로운 눈물은 눈물이 괴어 볼 수가 없다.
옛부터 내 눈에 스몄던 정이
사라지지 않고 괴어 눈물이 되네.
지난날 눈물의 가짓수는 많기도 했지.
그 눈물, 모두 흘러내려 바닥이 났는데,
우수와 환희와 함께
밤과 바람에 함께 사라져 갔는데.
기쁨과 탄식을 이 가슴에 미소띠며 던져주던
푸른 작은 별도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는데.
아아, 내 가슴에 품고 있던 사랑마저
하염없이 한숨처럼 사라졌거늘
옛 고독의 눈물이여,
이제 너도 또한 다 흘러 없어지거라.
로렐라이
하이네
왜 그런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슬퍼지나니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내 마음에 자꾸만 메아리친다.
쌀쌀한 바람 불고 해거름 드리운
라인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있는데
지는 해의 저녁놀을 받고서
바위는 반짝이며 우뚝 솟아 있다.
이상스럽구나 그 바위 위에
부르고 있는 노래 소리
그 멜러디는 이상스러워
그 노래의 힘은 마음에 스민다.
배 젓고 있는 사공의 마음에
자꾸만 슬픈 생각이 들기만 하여
뒤돌아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강 속의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무참하게도 강 물결은 마침내
배와 사공을 삼키고 말았나니
그 까닭은 말할 수 없으나 로렐라이의
노래로 말미암은 이상한 일이여.
너는 한 떨기 꽃과같이
하이네
너는 한 떨기 꽃과 같이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여라.
너를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가슴에 애수가 스며드누나.
너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나 하느님께 기도해야 하리,
언제나 네가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게 있어달라고.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이네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비록 불행하다 해도 신이라네.
하지만 불행한 사랑을
두 번씩 하는 사람은 바보라네.
나는 그러한 바보, 사랑받지도
못한 채, 또 다시 사랑에 빠졌네!
해와 달과 별들이 깔깔대고 웃네,
나도 따라 웃으며, 죽어간다네.
내 소중한 친구여
하이네
내 소중한 친구여, 너 사랑에 빠졌구나,
새로운 고통에 시달리고 있구나.
네 머릿속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네 가슴속은 갈수록 환해지겠지.
내 소중한 친구여, 너 사랑에 빠졌구나,
네가 그것을 설사 고백하지 않아도,
심장의 불길이 벌써 네 조끼 사이로
훨훨 타오르는 것이 보이는구나.
원망하지 않으리
하이네
원망하지 않으리, 이 가슴 찢어져도.
가버린 사람아! 원망하지 않으리.
수많은 다이아먼드로 몸을 꾸며도
그대의 마음은 캄캄한 밤이어라.
나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노라.
그대를 꿈꾼 그 때 그대 마음의 어두움도 보았다.
그대 마음을 갉고 있는 뱀도 보았다.
연인이여, 너는 정말 불행한 사람이었다.
맹세보다는 키스를
하이네
오오, 맹세는 하지 말고 오로지 키스만!
여자의 약속은 절대 믿지 않는다
그대 말 달콤하지만 키스는 더욱 달콤하다
나는 그대 키스 어디서나 간직하겠다
맹세란 빈 바람과 같은 것
아니, 내 말을 취소하겠다
그대는 당당하게 맹세하고 또 사랑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 가슴에 머리 기댄 채
그대의 하인이 되고 영원한 신뢰 속에서
축복받은 그대 용서를 감히 받겠다
그러면 내가 신뢰하는 동안
아니, 그보다 더 먼 훗날까지도
그대는 나를 사랑할 것이다
노래의 날개 위에
하이네
노래의 날개 위에
사랑하는 그대를 태우고
갠지즈 강가의 풀밭으로 가자
거기 우리의 아늑한 보금자리 있으니
고요히 흐르는 달빛 아래
장미가 만발한 정원이 있고
연못의 연꽃들은
사랑스런 누이를 기다린다
제비꽃들은 서로서로 미소 지으며
별을 보며 소근거리고
장미꽃들은 서로 정겹게
향기로운 동화를 속삭인다
깡총거리며 뛰어나와 귀를 쫑긋거리는
온순하고 영리한 영양들
멀리 귓가에 들려오는
강물의 맑은 잔물결 소리.
그 정원의 야자나무 아래
우리 나란히 누워
사랑과 안식의 술잔을 나누고
행복한 꿈을 꾸자꾸나.
꽃이 진 줄도 모르고.
꽃이 진 줄도 모르고, 봄이 갔네.
바알간 자목련 꽃잎이 푸른 하늘에 훤했는데,
꽃이 지면서였는지, 꽃이 흔들릴 때 였는지,
사는 것이 동굴 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아,
질척거리는 젖은 곳을 헛발질 하고 있는 것 같아,
짚는 곳과 짚이는 것은 왜이렇게 틀린 건지, 어둠속에 틀어박힌 것 같아,
꽃이 진 줄도 모르고, 계절이 지나가 버렸네.
사랑고백
하이네
저녁이 되어 어둠이 찾아 드니
바다는 더한층 거세게 파도 쳤다.
바닷가에 앉아 하얗게 부숴지는
파도의 춤을 바라보며
내 가슴은 바다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때 그대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아름다운 모습, 그대의 모습은
내 주위에서 맴돌고 어디에서나 나를 부른다.
세찬 바람속에서도,
거친 파도 속에서도
내 가슴의 한숨 속에서도,
어디에서나...
어디에서나...
나는 가느다란 갈대를 꺾어 모래 위에 썼다.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지만 심술궂은 파도가
이 달콤한 고백 위를 덮쳐가며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약한 갈대여, 먼지처럼 흩어지는 모래여,
사라지는 파도여, 난 이제 너희를 믿지 않으리!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내 마음은 더욱 날뛴다.
이제,
나 저 노르웨이의 숲에서
가장 크고 푸른 전나무를 찾아
그 뿌리채 뽑아
저 애트나의 불타오르는
샛빨간 분화구에 담갔다가
그 불이 붙은 거대한 붓으로
나 저 어두운 하늘을 바탕삼아 쓰겠노라.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이렇게 하면 저녘마다 하늘에는 영겁의 필적이 타올라
뒤에 오는 후손들은 모두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
하늘에 쓰인 말을 읽으리라.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이네는 산업혁명 시대 쯤 약 17~18세기 부근의 독일시인이다. 당시는 봉건영주와 (땅주인) 농노(농사짓는 노동자) 쯤으로 나뉘어 있었고, 문자매체 시는 봉건영주들의 감성 표현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현실적인 서민들의 생활감정,생활상, 인생고 표현이 드물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시라는 점에서, 마음의 응축인 서정을 표현하는 하이네의 시는 읽을 만하다.문자매체인 시는 봉건영주의 감성표현-산업혁명시대의 기업가들의 감성표현을 거쳐 지금은 서민들의 감성을 표현한다는 미명하에 , 서민들의 인생고난이 사라진 센티멘탈 감상주의나 지독한 자기주의에 빠진 난해한 표현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간간이 김신용같은 서민들의 생활고를 표현하는 시인들도있다.
저기에서 한숨에 까지,
원하는 만큼 대출(貸出)해준단다.
내 인생 어디까지 대출(貸出)해 줄 수 있나.
내 인생의 끄트머리까지 와서 대출(貸出)해 줄 수 있나,
아무도 오지 않을, 오고 싶지 않은, 거기에도 오려나,
구렁텅이 ,
구렁텅이 속까지, 찾아와서,
원하는 만큼 대출을 해 준단다.
저기에서, 노을이 지는 저 저녁, 내 유년의 기억이 묻힌
시간 속으로도 오는가.
어스름 비낀 저녁 끝,
여주나무 앞에 쪼그리고 앉은 한숨에 까지,
- 가게 문을 열면 곳곳에 대출해 준다는 명함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이름도 다양하다, 엄마 대출, 이모 대출, 대출을 받다가 빚더미에 쫓겨 자살까지 한다는 신문기사들 때문일까
이름도 바꿔서, 무서워 보이지 않을 것같은 명칭을 쓴다. 엄마, 이모 ...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짐작하고 있는데,
삶의 끝에서 체험으로 알고 있는데,
당해봐야 안다는,
빠져 봤기 때문에 안다는,
알고 싶지 않을 것들을 알면서 살아가는 生涯를 위하여, 여주나무에는 여주나무 열매가 달리고 있을까,
여주나무 그늘에서 쉬고 싶은 열매들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까.
조금은 아주 조금은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마주할 시간을 마주칠 수 있을까,
거울 속에 갇힌 내 얼굴과 마주할 수 있을까,
헛발질하는 풍선처럼,
어둠 속을 짚는 목발처럼,
짚는 것과 짚이는 것이 틀리는 헛발질 처럼,
풀잎사귀에 맺혀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나무가지 그늘에 스며들수 있을까,
물방울에 스며드는 푸른 하늘에 흘러갈 수 있을까, 오늘 없어지더라도
없어지는 것처럼.
오늘이 지나가면 내일은 또 어제일은 잊어버리고
나뭇잎엔 물방울이 맺히는데,
물방울 속에 잊었던 눈동자가 맺히는데,
먼 길은 잃어버린 채이고
어둠속에 질척거리는 발걸음이 맺히는데,
-다음 질문
한숨 쉬지 마라. 복 달아난다 뜻?
한숨 쉬는 것은 건강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있지만, 인생 설계에서 부정적인 것 보다는 희망적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것이 성공으로 이끌 확률이 많다는 의미쯤 이겠다.
서양 철학자의 말 마따나, 똑같은 사물을 판단할 때 물이 반 정도 남은 물컵을
어떤 사람은 "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하고 긍정적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물이 반 밖에 없네" 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일견 의미있는 말이지만, 인생을 컵에 남은 반잔의 물로만 비유한다는 것은 무리한 비유라고 보이는데, 그 속에서 인간들이 살아가고 인간들이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시라는 것도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