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김영승 시모음

인천 주안 자동차 2018. 6. 1. 17:21








     반성 16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반성 83



                                                                           김영승

예비군 편성 및 훈련 기피자 자수기간이라고 쓴
자막이 화면에 나온다
나는 훈련을 기피한 적이 없는데도
괜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어제나 그저께의 일들을 생각해본다
나 같은 놈을 예비해 두어서 무얼 하겠다고
어김없이 예비군 통지서는 또 날아 오는가
후줄그레한 개구리옷을 입고
연탄불이나 갈고 있는 나같은 놈을
나는 문득 자수하고 싶다
뭔가를 자수하고 싶다






    반성 99


                                                                                     /김영승

집을 나서는 데 옆집 새댁이 또 층계를 쓸고 있다.
다음엔 꼭 제가 한 번 쓸겠읍니다.
괜찮아요, 집에 있는 사람이 쓸어야지요.
그럼 난 집에 없는 사람인가?
나는 늘 집에만 쳐박혀 있는 실업잔데
나는 문득 집에조차 없는 사람 같다.
나는 없어져 버렸다.






             반성 163

                                                    김영승




코끼리들이 문득 가엾다.
코끼리 발바닥엔
어느 정도 두께의 굳은살이 박혔을까.
그 거대한 몸뚱이를 지탱하며 먹이를 찾아
뛰어다닌 벌판.
굳은살이라곤 입술과 유방과 성기밖에 없는
불행한 남녀들이 다투어 몰려온다.
귀족적이려고 매력적이려고 그리고
지성적이려고 무지무지 애를 쓰고 있다.
가엾다.





       반성 547


                                                       /김영승




소리가 멀어져 간다
멀어져 가는 소리를 들어본 자는
이미 죄인이 아니다


이미.





     반성 740

                                      김영승




어둠-껌껌한 골목
구멍가게 평상 위에 난짝 올라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옛날 돈 2만원 때문에
?아다니면서 내 따귀를 갈기던
그 할머니가
어떻게 나를 발견하고 뛰어와
내 손을 잡고 운다

머리가 홀랑 빠졌고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고……

나도 그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맥주까지 마시니 돈 좀 생겨지나보지 하면서
웃는다


이따가 다른 친구가 올 거예요 하면서
나도 웃었다.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읍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들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 땜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이윤학




자신이 만든 그늘에 고개 숙이고

평생을 살 여자 있다면, 그

그늘 밑에 신문지 깔고 눕고 싶네

 

변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짜인지

알고 싶네

 

버드나무 그늘 벤치에서, 헤

입 벌리고 잠든 남자들

 

떠나기 위해

매미들은 악을 쓰며

울고 있네

 

그 여자의 숨소리,

아주 작은 머리카락 흔드는 소리

 

날개 없이 날아다니는 것들이

헤매게 하네






          갈대




한 개 갈대 잎파리 흔들리는 것이 그대 눈빛에 흩날린다면 ,
한 개 갈대잎이 흔들리는 것이 싸늘한 바람결에 흔들리는 그것이, 그대 눈빛에 흩날린다면,
한 개 갈대잎이 , 저 먼 하늘을 향하여 아무 의미도 읽지 못하고, 
그대가 아무 세상(世上)의 의미를 읽지 못하고 내 안에 들어와 설 때,
아무 의미없이 허공을 향하여 흩날리는 , 수년 수백년 흩날리는 내 곁에  잠시 서 있는 시간(時間)이 흩날린다면
작은 위안은 못되더라도 어느날 흩날리는 것이 곁에 있었다는 작은 흩날림이었다면,
누군가 곁에서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을  






      갈대 .         




네 울음은,네 곁에 누군가 부딪치는 소리, 네 곁에 누군가, 뼈 깊은 슬픔에 가을이 흘러가는 소리,
네 울음은 네가 운 것이 아니다. 폐부 속에 바람이 흘러가는 소리, 바람 흘러가는 속으로 흩어지는 어스름 소리, 바람 속에 헤매이는 아득한 공간,
노을이 지는 석양(夕陽)빛이 하늘을 흘러가는 소리, 
흩어지는 人生이며,
말하지 못한 것들이 흩어지는 소리이며,
수년, 수백년 말하지 못한 것들이 지푸라기 흩날리듯 방황하는 소리이며,
수년, 수백년 먼지 이는 땅에 내리던 햇빛이며, 
버려진 잠이며,
잠 속에 얼룩진 꿈이며,




  2.
내가 본 갈대는, 사진 속에서 본 것들이고, 꼭 그 갈대 사진 옆에는 
갈대는 고독, 이런 글자들이 쓰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갈대는 고독한 것이라고 항시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이 내 유년 이었다. 봄이나 가을이면 머리가 어지러워서 운동장 가에서 구역질을 하며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곤 했다. 그리고 이발관에 가면 행복 또는 퓨슈킨의 시가 꼭 걸려있었다. 인생은 흘러가는것 , 그리고 흘러간것은그리워 지는것, 지금 내 기억에남아있는 것은 행복이란 글자와 퓨슈킨과 인생이란 말과 흘러간다는것, 그리워진다는 것 등만이 띄엄띄엄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때 거기에서 여기까지 살아온 것 같은데 나는 또 쪼그려 앉아 어스름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인생엔 거리가 없었다는 것 뿐이다. 그리워진다는 것, 추억한다는 것들이 얼마나 허상과 근접해 있는지, 그것들이 이기적인 생각들과 근접해 있는지 느끼고 있다. 요즈음 나는 삶에, 추억이라는것이 있는가 ,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과연 그때 어릴적에서 여기까지는 무엇이었던가, 의문이다.
의문은 가난한 자의 언어이다. 
.
  2-1

그리하여,  
이 저녁에 어두워가는 어스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하늘 끝에서 석양빛이 왜 흘러가는지, 멈추어있지 않은지, 묻고 있는 것이며 
또 그것은, 
왜 그런 물음을 던지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 지금, 묻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그것들은 내 삶에서 옆에서 비켜나 있지 않으며,

저녁 하늘을 스러지듯 흘러가는 붉은 노을은 왜 강물 위에 자기 모습을 비치는지,  理由가 무엇인지, 
그것을 왜 묻는지. 

어둠 속, 해체(解體)되어 가는 어스름 속에서도 그 물음이 남아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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