招魂(초혼)
金素月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主人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西山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山 우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산유화(山有花)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 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먼 훗날'
김소월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잊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못잊어
김소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
개여울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 안자서
파릇한 풀포기가
도다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시든
그러한 약속(約束)이 잇섯겟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안자서
하염업시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심은
구지 닛지말라는 부탁인지요
접동새
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 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설화를 소재로 해서 쓴 시이다. 옛날 진두강 가에 10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계모를 들였다. 계모는 포악하여 전실 자식들을 학대했다. 소녀는 나이가 들어 박천의 어느 도령과 혼약을 맺었다. 부자인 약혼자 집에서 소녀에게 많은 예물을 보내 왔는데 이를 시기한 계모가 소녀를 농 속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 재 속에서 한 마리가 접동새가 날아 올랐다. 접동새가 날아 올랐다. 접동새가 된 소녀는 계모가 무서워 남들이 다 자는 야삼경에만 아홉 동생이 자는 창가에 와 슬피 울었다. --는 것이 설화의 내용이다.
설화의 알면 작품의 이해는 어려울 것이 없다. 다만, 이 시의 '아우래비 접동'이라는 구절에서 '아우래비'를 어떻게 불 것이냐가 문제이다. 정한모 교수가 이것을 '아홉 오래비'의 활음조(euphony)로 본 이후 정설처럼 굳어져 버렸다. 이와 관련해서 마지막 연에 나오는 '오랍동생'이라는 말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남동생을 일컫는 말이다. '아우래비'라는 말도 이와 같은 뜻은 아닐까? 이 말은 아마도 '아우오래비'로 보는 것이 타당할 줄로 믿는다. '아우오래비'가 '아우래비'로 발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아홉 오래비'가 '아우래비'로 되는 것은 활음조로도 설명하기 곤란할 터이다.
내리는 비는,
내리는 비는, 철조망을 너머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갈 곳이 없다, 생각할 즈음이었을 것이다.
내리는 비가 철조망에 흘러 내리고 있을 것이라 , 생각한 적도 있었다.
보도블럭을 흘러가는 비가, 잎사귀에 맺혀 떨어지는 비가, 철조망을 넘어가거나
넘지 못하거나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비가 철조망을 너머가려다가 철조망에 걸려, 흘러내리고 있다는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자연을 왜곡하여 바라보듯이, 왜곡된 시점이 내가 사는 도시의 생활과, 나의 생계와,
도시계획인가 재개발인가로 피폐해진 피눈물과 같다는 생각을 하며,
건물의 담벼락 뒤 그늘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 살아가는 풀잎사귀처럼,
간간히 불어가는 젖은 바람처럼 거기에도 삶이 있다는 것과, 그 왜곡된 곳에도
왜곡된 모습으로 한번 바뀌어진 것은 삶의 바코드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어디로 갈 것인가 이전에 살 것인가, 살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할 때였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던 시간도 있었다.
비가 잠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종소리가 잠 속으로 울려 퍼지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잘 수가 없으면서도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걸려너머지고 있었다.
또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머리 뒤로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거짓이란 걸 알고 있었다.
비는 저 먼 세월 뒤에까지 흩날리지만,
내 가슴에 내리며,
山河에 내리지만,
내 귀속에 떨어지며
내 환청에 떨어지며,
갈 곳이 없지만,
山河에 내리며,
잎사귀에 맑은 빗방울 맺히지만,
떨어지며 흙에,시간에 스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