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성자 / 조오현(오현스님)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가라앉아 가는 혀
피고 지는 계절에 살아가나, 봅니다.
꽃송이는 계절을 지나면서 피어나고 또 지듯이, 그렇게 살아가나 봅니다.
밤 하늘에 흘러가는 별을 헤어보던 때가, 언제인지, 소리없이 피었나 싶은데, 지는 자리는 없나, 봅니다.
흘러가는 시각 위에서, 시간들의 간격 위에서, 시간에 쫓기며, 돈에 쫓기며 살았는데, 별을 헤어볼 틈도 없나 봅니다.
먼 등대에 불이 켜지면, 밤하늘 흘러가는 저기 어드메 불이 켜지면,
늦은 밤에 퇴근한 시간에 밤하늘이 흘러가듯, 일터로 나갈 뿐이지요, 피어나는 뜻도 관심없고,
지는 기척도 없이, 진 자리만 어두운 자화상처럼 어둡게 있을 뿐이지요,
인생이 어두운 자화상을 그려나가는 것이란 것은, 내 말이었던가, 거울의 말이었던가,
침묵인가,
내뱉지 못한 말들인가,
시대의 선 아래 선 아래 가라앉아 가는 혀인가,
누가 외치는 말이었던가,
입적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나 글을 열반송이라고 하는데 오현 스님의 열반송은 이와같습니다 /조오현스님의 열반송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조오현 / 스님.
<인천만 낙조 >
그날 저녁은 유별나게 물이 붉다붉다 싶더니만
밀물 때나 썰물 때나 파도 위에 떠 살던
그 늙은 어부가 그만 다음날은 보이지 않네
부처/ 무자화 6.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 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 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정작 필요했던 것은,
흘러가는 하늘의 별같던 부처님도 돌아가시고,
예수님도 돌아가시고,
지구는 먼 시간을 회전하며 별들 사이를 흘러간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어머니도 고령이시고, 언젠가 돌아가실 것이고,
나도 언젠가 죽겠지,
지구는 또 회전하며 별들 사이에서 시각을 표시하고 있겠지,
사람에게 정작 필요했던 것은 욕심 냈던 것만큼이 아니다.
욕심 부렸던 것 자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허상이요,
마음의 번뇌였을 지도 모른다.
잠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착각이요,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지구 위에서, 정작 필요했던 것은
욕심냈던 것이 아니다.
장미
5월의 장미는 피었는데,
5월의 장미는 붉은데,
재개발로 빈 집 담을 너머 5월의 장미는 붉은데,
장미는 계절의 여왕이라고 누가 말했나,
재개발로 비워진 길에 지려있는 똥, 오줌 , 위에 삼삼오오 모여든 똥파리떼
똥파리떼가 몰려들어 음모와 협잡으로 비워진 공간에서
이 다음 음모와 협잡을 모의하고 있나,
비워진 공간에 장미처럼 붉어진 협잡과 음모의 세상에 대해 토론하고 있나,
늙은이는 살던 자기집에서 시세의 절반의 절반 밖에 안되는 보상금을 받고 쫓겨나
죽을 때까지 자기 집을 마련 못하고,
세상의 가에서 숙명인양 걸어다니네,
걸어가는 걸음걸음을 숙명인양 피척거리며, 지팡이로 세상의 가를 짚고 있네.
피어나는 빈 공간엔 햇빛이 지난 꿈인양 증발하고 있는데, 기억이 사라지고 있는가,시간들의 간격은
어두운 밤하늘을 너머 흘러가고 있는데 무엇이 꿈을 지속하고 있는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꿈도 시각들도 허망했는가, 틈틈히 숨가쁜 시간들도 지나쳐 가면 그뿐이었던가,
사람들이 떠난 빈 공간엔 햇빛들도 뿌연 연기처럼 무기력한데.
그 공간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가라앉아가는 혀처럼
내뱉지 못한 말들을 떠올리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