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눈 시모음

인천 주안 자동차 2018. 6. 8. 20:14



        12월에, 눈.

 

 

 

눈이 내리네,

검은 나뭇가지 그리며 눈이 오네,

눈 뒤, 당구장이며, 노래 연습실이며, 담배를 피우며 어디인가로 전화하는 사람 그리며, 눈이 오네,

검은 나뭇가지 그리며 12월의 공중에서 눈이 흩날리네, 눈을 뒤따라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것인지 바람에 눈이 날리는 것인지, 눈이 날리며 검은 나뭇가지 그리고,

밤새 잠을 못 자 반 쯤 뜬 눈동자 앞에 눈이, 송이눈이 안개처럼 흩어지고 있네.

카드 대금 연체 막아야 한다고 밤새 잠 못 자고 스마트폰 켜고 카드 대금 연체 관련된 글들, 블로그, 싸이트 뒤적거리다가 결국 잠을 설치고 출근한 아침,

눈 내리네,

지나가는 인생길 한 모퉁이에서 이것 저것 생각하는데 눈이 오네,

잠시 쉬어 가고 싶은데 쉴 수 없는 처지여서 깊은 숨 내쉬며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네.

모르겠다,모르겠다 중얼거리며 머리를 흔드는데,

저 만치서

눈이 내려 오고 있네.

歷史의 절벽처럼, 절벽 옆에 자라난 잡풀 옆으로 눈이 풍경처럼 흩날리고 있네, 잊혀진 歷史처럼 당신의 이름처럼 눈이 흩날리고 있네,

간간히 생각났다가 묻혀지고 잊혀진 이름들을 떠올리며 기억을 찾아 가고 있는데,

잊혀진 者는 잊혀진 者입니다 속삭이며 눈이 오네.

이 길을 가면 또 다른 먼 길이 아득하고

이 시간이 지나가면 또 다른 時間들이 주마등처럼 다가오는데,

전화를 걸어, 애인에게 일요일엔 무얼 할거냐고 물어보다가,

내 차가 고장인데 얼마 얼마 들거냐고 물어보는 사람의 걱정을 듣다가,

내일은 바다에 가서 밀렸던 잠이나 조용히 바라보고 와야지,

내 눈동자 쳐다 보는

갈매기들의 날개짓 세세히 어루만져보다 와야지...

 

검은 나뭇가지 뒤에 서 있는, 누군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 잊혀졌던 그들이 흩날립니다. 갈 곳 없어, 갈 곳 없어 말도 못하고 서 있습니다.






     눈                 /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눈 길                                    / 고은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들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써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寞)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달력 아래 누워/ 최정


 

  날짜들이 우수수 머리맡에 쌓인다 봄나들이, 여름휴가 푸른 날짜들이 잠깐 튀어 올랐다가 부서져 내린다 목 겨누던 봉급날이 바람에 날리고 술 취한 골목들 비틀거리며 내려온다 불온한 꿈꾸던 밤들은 소화불량에 걸려 위태롭다 똑바로 눕기가 불편해 뒤척이자 고뿔 걸린 방이 콜록거리며 돌아눕는다 알고 있지 않은가 값싼 지식을 팔아먹은 날짜들이 진눈깨비처럼 떨어져 내리리란 것을 이미 접속된 욕망의 코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달력 아래 누워 쏟아지는 날짜들의 무게를 잰다 점점 가벼워지는 달력의 몸


  그 아래 새우잠 자는 날짜들의 뼈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봄 눈.

 

  1.

봄 눈 녹을 때, 눈 위로 찬 바람 불어가네, 마음 흘러가네.

마음이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아픔이 남아 있네.

그때 잊혀진줄 알았는데, 손님 같은 봄 눈 위에 당신이 차갑게 흘러가네

1년, 2년, 한겨울 내내 당신 생각한 적 없었는데,

겨울 지나고,  봄 눈 녹을 때, 바람이 불어가는줄  알았는데,

바람끝에 당신 눈동자 흔들리네.

잊는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는 것도 世上 바람에 섞여, 문득 떠난 줄 알았는데

문득 흘러가네. 

 

 

 

   2.

봄 눈 위에 저녁 어스름이 스며 있는 것인가. 

저녁 어스름 속에 검은 봄 눈이 바람을 쐬고 있는 것인가.

時間이 바람처럼 지나가면 곧 다 녹아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라질 것인데, 봄 눈 내리던 흩날림도 다 잊혀져 흔적도 없어질 것인데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소리,

나뭇가지에 싸르륵 싸르륵 내리고, 그 위를 또 덮는 저녁의 어스름에 귀 기울이네.

저녁의 어스름은 봄 눈 위를 흘러가네. 마음 속을 흘러가네






  눈 위에 쓰는 겨울 시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12월의 노래 

                                                 /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지하인간

최정



지하 계단 밟는 순간

방향 감각 잃어버리지만 안심하고

화살표만 따라 움직이면 된다


삼백육십오일 안전선으로 물러나라지만

일용할 바코드 움켜쥐고

2만 5천 볼트를 향해 뛰어든다


꿈을 닫겠습니다, 꿈을 닫겠습니다


등 돌린 사람들과 비비고 비틀고 비집으며

생존의 화살표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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