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황지우 안도현 시모음

인천 주안 자동차 2018. 6. 10. 11:27



             불 1.
 
 
 
따스함을 그리워하며 피어 오른다.
 
철근쟁이들도, 소장도 나오지 않은 새벽, - 신축공사장 한 켠,
드럼통 안에 지펴놓은 장작불이 탄다.
- 가랑잎을 스치는 바람.
종종 어둠속 가랑잎을 흔들어대는 불길.
찬바람 속으로 흔들리며 달려가는,
어두울 수록 더욱더 세차게 달려가는 불.
어둠속이란걸 알면서도 어둠의 끝이라는걸 어둠의 끝에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둠의 가랑잎을 칼날로 자르는 불.
찬바람 속에 헤매이는 찬바람을 견뎌온 차가운 피의 심장.
흐느끼며 달려가는 곳은 어디인가?
아버지의 시름을 너머 , 근육, 심장을 건너 아버지가 피 흘렸던 숲 속, 아버지가 쓰러진 대지의 풀잎들을 밟는 발길들을 뒤쫓으며 소리없이 타는 불은
이 새벽, 소리없이 타는 불은 
잊었던 얼굴들을 내면 깊숙이 불러내며 불꽃이 새벽바람 속에 피고지네.
돌아서면 歲月의 흔적 어둔 바람 속에 사라진다네, 내가 서 있는 곳 어디인지 몰라도 그리움은 나를 잘도 알아 찾아 온다네. 
우우우 제 몸 부딪히며 앞다투어 가는 1月의 마른 나뭇가지들. 
잡고 싶네, 그 무엇인가를 잡고 싶네,
잡히는 것 강물의 뿌리흔적일 뿐이지만 
그것을 잡으며 잡고 있는 내 손을 알 수 있다네.
 
공사장 주위 나뭇가지에 별이 걸려 찬바람을 맞고 있고 
움직이는 모습은 없다. 저 쪽 멀리 최씨트럭의 헤트라이트가 엔진소리를  내며 땅을 훑으면 귀를 돌려, 어둠저쪽을 얼핏 쳐다본다. 
불은 어둠의 끝자락에 감겨 훨훨 타오르고
시려운 등을 흔들리는 불길 쪽에 대고 서면 
얼굴을 세차게 때리고 옷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
길은 길이 아니었어
항시 없어질줄 알면서도 길은 길을 만들었어,가다 보면 길은 또 없어졌어,
불길에 흔들리는 돌조각, 나무 부스러기, 녹슨 못곳들.
人生이란 고단한 철로길의 녹과 같이 찬바람에 이리저리 흩어진다는 것을 
말이 없어도, 마음에 느끼며,
장작불은 어둠속에 타오르며, 줄지어 강물을 따라 걸어가는   발길.
바람에 흔들리는 눈동자.
깊이 깊이 감은 눈 속에 새겨지는 불꽃의 허망함. 
인부들이 불을 등에 지고 묵묵히 돌아서 있네. 푹 눌러 쓴
모자 아래에서 새어나오는 막걸리 냄새,
시멘트 냄새, 쾌쾌한 냄새.
나뭇가지에 별이 걸려 찬바람에 씻기고 있다. 


불은,
갈 곳이 없기에 
더 맹렬히 피어 오른다.






           숯불의 시.        



군불을 지피고 남은 숯불에 감자를 묻는다
숯불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는 것 같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온기로 몇 알의 감자라도 익힌다면
사그라져 남는 재도 따뜻하리라,고 생각하는
눈빛 같다. 수확이 끝난 빈 밭에 몇 줌의 감자를 남겨두는
경자(耕者)의 마음도 저와 같을까?
묻힌 것에게 체온 다 주고 사그라지고 있는 모습이
삶이 경전(耕田)이며 곧 경전(經典)이라고 말하는 눈빛 같기도 하다
추수가 끝난 빈 밭에서 주워온 몇 알의 감자,
숯불 속에서 익고 있는 그 뜨거운 속살이 심서(心書) 같아
마음의 빈 밭에라도 씨앗 하나 묻어둔 적 없는
내 삶의 경작지(耕作地)가 너무 황량해
한 끼의 공복을 메울, 그 묵언의 재 속에 남겨진
사유 앞에 내민 내 텅 빈 두 손이 시리다
숯불 꺼지고 나면, 또 어둠의 재 속에 묻혀버릴 이 저녁



                               






  겨울 산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황지우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 보면
朝鮮八道,
모든 명령은 초소다

한려수도,內航船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






     눈 맞는 대밭에서

                                                               황지우

단식 7일째
도량 뒤편 눈 맞는 대밭에
어이없이 한동안 서 있다
창자 같은 갱도를 뚫고
난 지금 막장을 막 관통한 것이다
눈 맞는 대밭은 딴 세상이 이 세상 같다
눈덩이를 이기지 못한 댓가지 우에
다시 눈이 사각사각 쌓이고 있다
여기가 이 세상의 끝일까
몸을 느끼지 못하겠다
내 죽음에 아무런 판돈을 걸어놓지 않은 이런 순간에
어서 그것이 왔으면 좋겠다
미안하지만, 후련한 죽음이





손을 씻는다

                                                       황지우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義手를 외투 속에 꽂고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코리아나 호텔 앞
나는 共同正犯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가 나를 씻는 것인지
내가 비누를 씻는 것인지
미끌미끌하다














       하수도는 흐른다

                                                                                                         - 안도현

 

그대들이 퍼먹고 놀다 잠든 한밤에도 하수도는 흐른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잡고 하수도는 흐른다
씨벌씨벌하며 기어이 하수도는 흐른다
이 악물고 눈물 머금고 닦지도 않고 하수도는 흐른다
똥오줌물 데리고 하수도는 흐른다
고관의 저택에도 하수도는 흐른다
아파트 층과 층 사이로도 하수도는 흐른다
손에 손을 잡고 하수도는 흐른다
땅 밑에도 길이 있다고 하수도는 흐른다
이 썩은 세상을 뒤집어쓰고 하수도는 흐른다
흐르다가 숨이 막히면 거꾸로 하수도는 흐른다
그대들의 주방으로 침실로 하수도는 흐른다






    그대                                                                                    - 안도현



 

한 번은 만났고
그 언제 어느 길목에서 만날 듯한
내 사랑을
그대라고 부른다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홀연히 떠나는 강물을
들녘에도 앉지 못하고 떠다니는 눈송이를
고향 등진 잡놈을 용서하는 밤 불빛을
찬물 먹으며 바라보는 새벽 거리를
그대라고 부른다
지금은 반쪼가리 땅
나의 별 나의 조국을
그대라고 부른다
이 세상을 이루는
보잘것없어 소중한 모든 이름들을
입 맞추며 쓰러지고 싶은
나 자신까지를
그대라고 부른다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읍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들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 땜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든 세월에게                                                                                           - 안도현



홍매화 꽃망울 달기 시작하는데 싸락눈이 내렸다.
나는 이제 너의 상처를 감싸주지 않을 거야
너 아픈 동안, 얼마나 고통스럽냐고
너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백지 위에다 쓰지 않을거야
매화나무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나뭇가지 속이뜨거워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너를 위하여 내가 흘린 눈물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거야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싸락눈이 봄날을 건너가고 있었다.






      내미는 손.


수십년 시간을 건너 그대에게 내미는 손은 무엇인가,
수십년 시간을 건너 듣고 있는 그대의 외침은 무엇인가,
중얼거리는 그대의 목소리를 건너 내가 잊고 지나온 인연은 무엇인가,
구렁텅이에 떨어져 , 어두운 바람을 질척거리는 그대의 목발은 무엇인가.
수십년의 시간을 건너 그대에게 내미는 목발. 필요하신가요.
바람은 나무밑둥의 뿌리같은 그대의 도시의 골목길을 헤매이고 있고,
내 옆에도 있고,
눈(眼)에,
헤매이는 바람결에도 있으니
나는 바람 위에 무엇을 놓아 버렸는가,

수십년 시간을 건너 그대에게 내미는 손은, 그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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