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풀잎은 바람 앞에서만 눕지 않는다

인천 주안 자동차 2018. 6. 11. 09:21



   풀잎은 바람 앞에서만 눕지 않는다


                                                                          

                                                                                                                /신현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한 새벽에
들로 나가보아라
나무들이 초록의 눈 뜨고
하늘을 향해 일어서는 새벽
사람아 네가 일어난 자리
한번 바라보아라
간 밤 네 가슴을 흔들었던
무수한 꽃들의 흔적이 있으리니
너는 그 흔적 앞에 경건해야 하며
그리고 걸음을 옮겨
네가 지나갈 자리 네가 돌아갈 자리
저 들로 나가보아라
풀잎은 바람 앞에서만 눕지 않음을 보리니
때로는 맑은 이슬 앞에서도 눕고
때로는 거친 발걸음에도 눕는 것을 보리니
사람아 나는 너를 풀잎이라 부르고 싶다
너에게 긴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가끔은 너의 이슬도 되고싶고
거친 걸음도 되겠지만
사람아 세상 사는 거 그리 대단한 것 아니다
살다 보면 눈을 뜰 때가 있고
눈을 감아야할 때가 있지 않겠느냐
오늘은 그렇다
흐르는 맑은 물에 네 손을 씻고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한 새벽에
들로 나가보아라
저 풀잎도 바람 앞에서만 눕지 않는 것을
네가 정녕 보리니.







       풀잎



사람이 그런가보다, 작년 11월 부터 도로 앞에 재개발한다고, 철거한다 하고,

이사 간 상가들 유리문에 , 셔터에 붉은 락카로" X자 " 써놓고, "철거" 라고 한창 써 댈 때엔

그 붉은 락카 글씨만 보이고 , 마음은 싱숭생숭하였는데

요, 며칠 비 내리고

검은구름이 하늘을 가리며 흘러가더니,

오늘은 밝은 햇살 흩날리는 나뭇잎사귀가 눈에 들어오네,

사람 사는 것이, 나뭇잎사귀 흩날리고, 계절이 지나가며 짙어지는 것이겠지만,

그 그늘도 짙어지는 것이겠지만,

나뭇잎사귀가 팔랑이는 것과

흔들리는 공간에 파문을 내며 떨어지는 것은

누가 알겠는가,

단지, 지나가는 바람이 흘낏 눈길을 주었었다고나 기억할까,

잠시 누웠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풀잎이라고 할까,

맑다는 것은,

풀잎 위에 맺힌 맑은 물방울은 아예 한방울의 눈물쯤이라고 할까,

내가 태어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흘려볼 수 있는 한방울의 눈물이라고 할까,

짙은 마음이라고 할까,

사람이 가진 권리라고 할까,


어느날 다가올 사태라고 해야 하나,

그때쯤 되면 사태, 인생사고 쯤으로 받아들이겠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덮치겠지, 꿈을 덮치고, 생계를 덮치고

나의 미래나,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까지 덮치고, 내 잠속으로까지 흘러와

버리지 못한 추억처럼 젖어들겠지,

망각의 뒤편으로 다가와 버드나무 잎새 흔들리듯,

지루하고 먼 인생을 시작시키겠지,

망각은 인생이 아니라,

인생의 실패는 망각이 아니라,

잊혀짐이란 것을,

누가 알겠는가, 인생은 인생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그 어느날 걸어갈 길이었다는 것을,


풀잎의 이름을 빌어 인간사를 표현하고자 하나,

풀잎 보다 인간사가 더 나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풀잎의 너그러움보다 더 기억될 만한 것이 있을까, 생각한다.

풀잎이 눕는 것보다 더 겸손한 것이 있을까, 생각한다.

사람의 세상에 살아가다가 , 더 갈 곳이 없을때 기대이는 것이 풀잎 한 줌은 아니며,

풀잎의 맑은 빗방울은 아니며,

맺혀 떨어지는 빗방울이 스미는 시간은 아니며,

저 먼 곳까지 헤매이며 가는 것 같지만....







        부빈다는 것.

 

                                        

안개가
나뭇잎에 몸을 부빈다
몸을 부빌 때마다 나뭇잎에는 물방울들이 맺힌다
맺힌 물방울들은 후두둑 후둑 제 무게에 겨운 비 듣는 소리를 낸다
안개는, 자신이 지운 모든 것들에게 그렇게 스며들어
물방울을 맺히게 하고, 맺힌 물방울들은
이슬처럼, 나뭇잎들의 얼굴을 맑게 씻어준다
안개와
나뭇잎이 연주하는, 그 물방울들의 和音,
강아지가
제 어미의 털 속에 얼굴을 부비듯
무게가
무게에게 몸 포개는, 그 불가항력의
표면장력,
나뭇잎에 물방울이 맺힐 때마다, 제 몸 풀어 자신을 지우는
안개,
그 안개의 粒子들

부빈다는 것

이렇게 무게가 무게에게 짐 지우지 않는 것

나무의 그늘이 나무에게 등 기대지 않듯이

그 그늘이 그림자들을 쉬게 하듯이



                              /김신용.






    언제 꽃이 진 지도 모르고,

  



날은 텃밭 부근에서부터, 내 마음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어둠이 밀려들고 있는데,

밀려드는 어스름은 인생을 해체하고 있는데,

한모금의 담배는 인생을 대체할 수 있는가?

내뱉지 못한 말들은 인생을 대체할 수 있는가?  

저녁 어스름에 그늘을 줍는 사람처럼,

스러지는 저녁 어스름에 흔들리는 풀잎에서 그림자를 보고 있는 사람처럼,

햇빛과 비와 밤 사이 흘러가는 바람 속에서 무럭 무럭 자라나는 상추잎처럼,

어둠 속에서도 자라고 있는 상추잎처럼,

밀려드는 석양빛과 스러지는 어스름 속에서 부서진 햇빛의 시각처럼,

조각 조각난 그림자처럼,

잊혀졌다는 것이 풀잎이 누웠다가 아무렇지 않게 바람에 흩어지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바람에 흩어지는 것처럼,

잊혀진다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꽃은 흐드러지게 펴고,

인생에 흐드러지고,

인생이 저물때까지 흐드러지고,

언제 꽃진 지 모르게 흐드러지고,

어느 날, 밤 사이 꽃이 피고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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