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망각은 없다

인천 주안 자동차 2021. 1. 1. 15:58

      망각은 없다

 

 

나더러 어디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서...." 라고 말 할 밖

에.

돌들로 어두워진 땅이라든가

살아 있느라고 망가진 강에 대해 말 할 밖

에;

나는 다만 새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알고,

우리 뒤에 멀리 있는 바다에 대해, 또는 울고 있는 내 누이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이어지는 것일까? 어찌하여 검은 밤이

입 속에 모이는 것일까? 어찌하여 죽은 사람들이?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물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얘기부터 할 밖에,

참 쓰라림도 많은 가구들,

흔히 썩어버린 큰 가축들,

그리고 내 괴로운 마음 얘기부터,

 

서로 엇갈린게 기억이 아니다

망각 속에 잠든 노란 비둘기도,

눈물 젖은 얼굴들,

목에 댄 손가락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게 기억이다;

이미 지나간 날의 어둠,

우리의 슬픈 피로 살찐 어떤 날의,

 

여기 제비꽃들, 제비들이 있다,

마음에 쏙 들고

시간과 달가움이 어슬렁거리는

마음 쓴 엽서에 등장하는 것들,

 

하지만 이빨보다 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침묵이 쌓이는 껍질을 물어뜯지도 말자,

왜냐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죽은사람이 참 많고

붉은 태양이 갈라놓곤 했던 바다 제방이

참 많고,

배들이 부딪치는 머리들이 참 많으며,

키스하며 엉키는 손들이 참 많고,

내가 잊고 싶은 게 참 많으니까.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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