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양재역에서

인천 주안 자동차 2021. 10. 13. 12:38

    양재역에서

 

 

양재 시민의 숲은 있는데,

양재 시민의 숲에 갈 차비가 없다.

양재 시민의 숲에 갈 차비는 있는데,

양재 시민의 숲에 가서 할 일이 없고, 반겨줄 사람도 없다.

 

내가 가진 것은 지하철의 빈 의자뿐

이 지겨운 빈 의자에서 일어나도 갈 곳이 없다.

 

지하철에 지하철은 또 달려오고 알림음은 울리지만,

반겨줄 그 누구도,

기억에 남은 시간들은 깨어진 햇빛처럼

길바닥에 흐르는 물을 비추지만, 그 물 위에 내 얼굴을 비추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처럼 흐르는 시간들이여

누가 왔다가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시간이여

철길에 몸을 내던지듯

내던지고 싶은 시간이여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 어쩔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위에 세월이 흘러가는 것인가?

바람이 불어가는 것인가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는 인생은 또 그 무엇을 향하여 종착지를 향하는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어버린

어두운 벽면에 불어가는 바람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지나간 추억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닌것처럼

인생에서 남은 것이 몸 하나밖에 없는 시간처럼

아 나무에서 스스로 떠나가는 무게처럼

스스로 떠나가는 물길

떠나가며 깊어가는 물길은 그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햇빛은 그 무게를 재고 있다.

깨어진 햇빛같은 시간 위에서

그 무게가

나락의 무게가 어디까지인지,

사람의 무게가,

어디를 비치고 있는지,

얼굴 위에 비치는 햇빛 위에서,

 

또 다른 곳에 갈 차비도 없다.

바람은 어두운 벽면 위를 쉼없이 불어가는데,

갈 곳 없는 벽면 위를 불어가는데,

사라져가는 것이 바람뿐인가

가벼이 사라져 갈 수 있는 것이 바람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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