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천상병 시모음

인천 주안 자동차 2018. 5. 20. 18:59


            -나의 가난은-         ./천상병




오늘 아침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귀 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강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갈대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새                                                              /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날이 와, 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그리움을 그리워 할 테니,
.


개가 짖어도 저녁 하늘에 구름은 흘러가고,
개가 짖어도 기차는 세월을 부딪히며 가고,
개가 짖어도 
개가 짖어도 
피를 토하며 개가 짖어도 눈송이는 고요한 골목길에 내리고,
개가 짖어도 꽃봉오리는 나뭇가지에 피고,
개가 짖어도 버들 강아지에 봄바람은 속삭이고,
개가 짖어도 도로에 자동차들은 거침없이 내달리고,
개가 짖어도 어둠 속에 피눈물은 흘러 퍼지고,
개가 짖어도 흙을 퍼먹는 인생은 짧아라,
개가 짖어도 그대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개가 짖는 날  희망사항이 햇빛처럼 사라지고, 언젠가는 그리움을 그리워 할 테니....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이 봄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뭇가지를 타게 될 것이니,
사랑을 그리워할 것이냐, 위스키라도 마실 것이냐,
종말을 그리워할 것이냐.
無意味함에 대하여 무슨 구실을 생각할 것이냐,







  『그날은 - 새』                                                                 /천상병




이젠 몇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년이었던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네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여름이 다가설때,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 봄이 다 지나가고 시원한 여름이 다가설때, 나뭇가지에 푸르른 잎들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식당일 요리 준비 하다가 쓰러지고 119에 실려가고, 아직 의식이 없다.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아직 의식이 없다는 말을 그의 와이프한테 처음듣고 울컥했을뿐, 다음 말을 잇지 못했을 뿐, 
나뭇가지에 잎사귀들은 정신없이 푸르러 가고 우리들은 이 도시에서 그가 스러졌던 일들을 잊어버리겠지, 정치나, 경제나 뭐 그런 것들에 대해 한마디씩 하면서 서서히 잊고 지내겠지. 그 일이 내게도 푸른 잎사귀 그늘처럼 짙게 다가올때까지, 
무심하게 잊고 지내겠지, 
무엇이 있다가 사라졌는지....
바람이 바람처럼
나뭇가지가 나뭇가지처럼,
시간이 시간처럼 또는 망각(忘却)이 푸른 잎새 그늘처럼,
살다가 사라지는 일을 서러워하지 않겠지,
서러워하기 전에 어린아이의 눈처럼 잊어버리겠지.
잎사귀에 맺히는 맑은 물방울처럼 잊어버리겠지,

바람이 바람처럼
나뭇가지가 나뭇가지처럼,
하얀 꿈이 하얀 꿈으로 포말처럼,
한 여름밤의 꿈보다도 쉽게 잊혀지는 
사라지는 것들을 잊고, 일상(日常)에 대해 생각하며 자기의 길을 걸어가겠지. 

소(牛)의 눈처럼,












                                                                      
  

   푸른 것만이 아니다
                                                                                               천상병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바람에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크레이지 배가본드 ;미친 방랑


                                                                    천상병

 

1
오늘의 바람은 가고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잘 가거라
오늘은 너무 시시하다. 뒷시궁창 쥐새끼 소리같이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2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담배를 빤다.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물을 마신다.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
우물가, 꽁초 토막......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 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양이다.

아시지의 성(聖)프란시스코는

새들에게 은총 설교를 했다지만

저 새는 그저 아프기만 한 모양이다.

수백 년 전 그날

그 벌판의 일몰(日沒)과 백야(白夜)는

오늘 이 땅 위에 눈을 내리게 하는데

눈이 내리는데......




--나의 남편 천상병 시인은 한마디로 남편이라기 보다 늘 일곱 살짜리 같다는 별명을 붙일 만큼 아기 같은 심성을 가진 남편이다. 때로는 깔깔 웃다가 마음에 안 들면 "문디 가시나"(본인은 애칭이라 함)라고 말을 뱉곤 했다.

남편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오빠를 따라 서울에 왔다가 명동 '갈채다방'에서 그와 처음 인사를 나눈 것으로 시작됐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살게 되면서 '갈채다방'에 더욱 자주 들르게 됐다. 그때 많은 문인들과 만나게 되었다. 서정주 선생님을 비롯해서 김동리·손소회·박기원·황금찬·박재삼·이근배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이 계셨다. 오빠는 '금문다방' '은성다방' 등 여러 곳을 나를 데리고 다녔다. 오빠 친구들이 동생처럼 아껴주시고 귀여워해주셨기에 천상병 시인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오빠 친구들과 함께 영화도, 연극도, 대폿집도, 자연스럽게 다녔다. 그때 나의 눈에는, 많은 문인들의 모습이 순수 그 자체처럼 보였다.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돌이켜 생각해본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삶을 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그러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으로, 잘 견디어낸 나 자신에 감사하고 싶다.

천상병 시인이 나의 남편이 되기 전의 일이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옥고를 치른 후 부산 형님 댁에 내려갔다가 7개월 만에 서울에 올라온 그는, 시립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다. 그의 입원 사실을 모른 채 행방불명이 되었다며 걱정하던 친구들이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연락이 없자 죽었다고 생각하고, 유고시집을 만들기로 했다. 성춘복·민영·박재삼 선생들께서 흩어져 있던 그의 시들을 모았다. 민영 선생님이 원고를 정리하시고 성춘복 선생님이 돈을 마련하셔서 유고시집《새》가 나왔다. 김구용 선생님이 쓰신 <내 말이 들리는가>라는 서문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시집 발간 이후 천상병 시인은 시립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니까《새》는 살아 있는 사람의 유고시집이 된 셈이고, 그것은 천상병 시인만이 가진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나는 정신병원을 찾아가 그를 면회했고, 병원에서 그를 보살펴주던 김종해 박사님의 권유로 그를 퇴원시켜 2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김동리 선생님의 주례로 종로5가 동원예식장에서 식을 올렸다.

수락산 밑 초가집 문간방 하나를 얻어놓고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아침이면 일어나 수락산 입구까지 산책하고 돌아와 아침을 먹고, 소꿉놀이하듯 그렇게 시작한 신혼생활은 상상을 초월한 생활이었다. 그 사이 또 한 번의 정신병원 입원 등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꿈이라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결혼생활 20년, 참으로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살앗다. 남편을 두고 기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편은 결코 기인이 아니라 순수한 삶을 살다 간 아이 같은 심성의 시인이었을 뿐이다. 아마도 그런 순수한 마음의 사람은 앞으로 다시 없을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거듭 말하곤 한다. 그를 오십년 동안 거울 안 같이 들여다 본 나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지 30년(13년인데 표기가 잘못된 듯 합니다. 김승규). 올해도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천상병예술제가 열린다. 앞으로 남은 내 생도 남편을 위해 쓰고 싶다. 소풍 끝내는 날 가서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월간 문학사상 200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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