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어느 날.

인천 주안 자동차 2019. 2. 8. 11:18



      어느 날.




바람은,

저녁의 눈 아래 스미는, 어둔 하늘에 펄럭이는

옷 소매에 파고든 바람은

과거로부터 새어드는 바람은

내 존재를 흔드는,

지금이 흔들리는

지금 이 어두운 숲 속을 헤매이는

펄럭거릴 뿐이지만,

시간이 새어드는

수십년 세월을 너머서, 수십년 펄럭거린 아픔이 줄을 지어 불어오는 바람은

수십년 세월을 너머서 내가 내게 내미는 손과도 같은 것이기도 하며

수십년 세월을 너머서 내가 내게 내미는 악수이기도 하며,

수십년 세월 전, 흔들리던 잡초같은 풀잎사귀이기도 하며....

바람은

어둠 속에 흔들리는 것이지만,

내 마음을 휘젓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못한 그 무엇에도 흔들리는 이 바람은 나에게 내 가슴에 무엇을 내던지고 있는가

나뭇가지 위에도 불어가는 바람이 흔들리는 것은

비어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서성이는 발길이 있기 때문이고

그리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람 소리를 너머 수십년 세월을 너머 내미는 손이 있다는 것은

못잊힐 것이 있다는 것이니

아무것도 없는 것에도 바람이 흔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인가.

잊히지 못한 것이 어두운 것이기 때문인가.

잊히지 못하는 것이 가지지 못한 것이기 때문인가,

그치지 않는 바람은 그치지 않는 바람 때문인가

그치지 않는 인생 때문인가.

고생이란 것이 나뭇가지 같은 것에 걸려 있기 때문인가,





 그대는 내게서 본다.   /셰익스피어



찬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뭇가지에

몇 잎 누런 잎새 앙상한 계절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엊그제 아름다운 새를 노래했건만

지금은 폐허된 성당 또한 내게서 본다.

만물을 휴식 속에 감싸는 제 2의 죽음인

검은 밤이 서서히 데려가는 석양이

서산에 파리하게 진 후의 황혼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청춘을 키워준 열정에

그만 활활 불타 죽음처럼 사그라진

그 젊음의 잿더미 속에 가물거리는

청춘의 잔해를 내게서 보았거든

그대 날 사랑하는 마음 더욱 강해지거라.

머지않아 그댄 내게서 떠나야할 사람이거든.




사랑은 아픔을 위해 존재합니다.           -칼릴 지브란.




사랑이 그대를 손짓하여 부르거든 따르십시오.

비록 그 길이 어렵고 험하다 해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품을 때에는 몸을 맡기십시오.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아픔이

그대에게 상처를 준다 해도

사랑이 그대에게 말하거든 그를 믿으십시오.

비록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모조리 깨뜨려 놓을 지라도.


왜냐하면 사랑은 그대에게

영광의 왕관을 씌어주지만 또한

그대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도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대의 성숙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대를 아프게 하기 위해서도 존재한답니다.


사랑은 햇빛에 떨고있는

그대의 가장 연한 가지들을 어루만져주지만

또한 그대의 뿌리를 흔들어대기도한답니다.




깨우침과는 먼 세계에서.



나는 땅을 비집고 나온 새싹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바라보며 미처 생각지도 않았던 생명이 올라온 것에 감동하였다.

고통을 이기고 올라온, 참혹한 겨울을 건너, 마치 내 깨우침과는 먼 세계에서 올라오는....여러개의 말들을 떠올리며....

그러나 그것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필연이듯이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봄이 오면 필연적으로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죽음 같은 세상 위에도 필연적으로 삶이 돌아오는 것처럼

깨우침처럼....

산골짜기를 흐르는 시냇물이 숲을 적시는 것은 마음을 적시는 것과 같은 것처럼

깨우침처럼....



    




       그대에게.



그대에게 내미는 말이 4월의 꽃처럼 햇빛에 흩날리기를 희망했다.

그대에게 내미는 말이 시장에서 구해진 진귀한 보물같은 것이길 원했다.

그대에게 내미는 말이 세월을 너머서도 강물이 땅을 적시듯, 애증(愛憎)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쳐간 자동차처럼, 자동차 소음처럼, 언젠가 지나친 경적소리처럼 지나가 버렸고, 꽃이 피어나고, 지하철에선 유리창이 흔들렸다. 어둠이 지나쳐갔다.

해가 바뀌어도 내 귓가를 스치는건 지나간 소리들, 또 먼 곳에서 꽃이 피어나고, 꽃이 피어났다는 소식이 잠깐 들려오고, 계절이 흘러갔다. 그리고 지하철이 지나쳐갔다.

그대로부터 오는 귓가에,

그대에게 노란 꽃송이를 내민다.

전화벨 소리가 그대의 심장에 다가간다.

지금도 그대에게 내미는 말이 4월의 꽃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한때는 격정에 쓸리이는 나이였고, 인생이 흘러갔다.

무엇이 남아있는가 혹은

무엇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가 아니

무엇이 없었는가.


인생은 먼 길이었으나

인생은 귀 기울였던 그 기울임, 그 경사,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 그대에게 내미는 말이 버둥거리고 있으니....


꽃이여, 새싹이여,

다가설 수 없는 아름다움이여.


아름다움이여.


발을 뺄 수 없는 것이여,






   당신을 사랑하기에         헤르만 헤세.



당신을 사랑하기에 밤에 나는

그토록 설레며 당신께 가서 속삭였지요.

당신이 나를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당신의 마음을 따 왔었지요.


당신 마음은 나와 함께 있으니

좋든 싫든 오로지 내 것이랍니다.

설레며 불타오르는 내 사랑에서

어떤 천사라도 그대를 앗아가진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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