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4월이 가기 전에.김중식 시모음.

인천 주안 자동차 2018. 11. 16. 09:43



     4월이 가기 전에.




4월이 가기 전에,

무슨 일을 하여야 하는가,


서글픈 무슨 일이 있었는가,


4월이 가기 전에,

나뭇잎파리는 푸른 하늘 위에 흔들리고,

새잎이 끊임없이 밀려오는데, 나뭇가지 위를 끊임없이 흩날리고 있는데,

한 방울의 눈물이 푸른 하늘에 멍들어있는데,

4월이 가기 전에


너는 사랑을 하는가


가슴아픈 가슴 아픈 푸른 하늘같은 퍼런 사랑을

너는 사랑을 하는가

사랑을 기억하는가.

4월이 가기 전에

기억하여야 할 것들은 길가 멀리에서 잃어버린채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은 기억의 묘비명에 흩어져 있는데,

묘비의 글자들은 이슬비처럼 아른거리며 마음 속으로 불어오는데

4월이 가기 전에, 울어야 할 것들은 울어,

울어 4월을 보내는 것.

사람들은 길 가에 늘어서서 흘러가는 바람과 시간들을 바라만 보고 있네.


4월이 가기 전에,


4월이 가기 전에, 무엇이 있어

나뭇잎파리가 흩날리고 있는가,

무슨 기억이 있어

나뭇잎파리가 흩날리고 있는가,





     모과                  



                                                                                  김중식.

사랑이 고통일지라도 우리가 고통을 사랑하는 까닭은

고통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감내하는 까닭은

몸이 말라 비틀어지고

영혼이 꺼멓게 탈진할수록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지속적인 냄새를 피우기 때문이다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집요한 냄새를 피우기까지

우리의 사랑은 의지이다

태풍이 불어와도 떨어지지 않는 모과

가느다란 가지 끝이라도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의지는 사랑이다


오, 가난에 찌든 모과여 망신亡身의 사랑이여!





아 아



                                                                           김중식.

자다가도 일어나 술을 마시는 이유는

경의선의 코스모스에서 치명적인

냄새를 맡았기 때문.

최초의 착란,

그 순간 지진이 있었고

붉은 태양의 시간이 흐른 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던 그이가

세상 단 한 사람만을 미워하게 되었기 때문.

잊기에는 생이 짧다는 것을.






   인디언 기도문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 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러 하여금 깨끗한 손, 똑 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두사람.                /인디언들의 결혼 축시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눈.




눈은 평등하게 내리니 골 깊은 경계엔 무게가 더하여

고생 끝에 무너지는 무게. 어둠 속에 무너지는 무게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어디까지 무너지는지 알 수 없다.

눈은 내릴 뿐 내려 쌓일 뿐

그대 눈매, 어디까지 쌓이는지 알 수 없다.

산마다

고을 마다 헤집어 볼 뿐,

그대 흩날리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침묵 속에 흩날려 갈 뿐.


눈에 무게가 있다는 것은, 그것은,

눈길을 걸으며 느낀다.

무너지는 것들은 쓸리는 무게가 있음을.


눈은 무너지지만 눈은 무너지며 느낀다.

무너지는 것들이여. 투명함이여,

12월의 투명함이여.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여,

눈은 흔들리며 온다. 흔들리며 온다. 흔들리며 내린다.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여.

아픔이여.

광막한 어둠 속에서 광막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대가 미처 다하지 못한 말 한마디여. 어둠이여.

미처 다하지 못한 그 말에 내릴까.

傳하지 못한 그 말에 내릴까.

눈은 내리지만, 어둠은 그것을 덮지 못한다. 흔들릴수록 덮지 못한다.

눈은 내리지만, 무너지지만.

그대 속삭임이 들리지 않지만, 그대 속삭임이 들리지 않지만

속삭이기 위하여 내리는 것처럼.

눈이 내린다


어차피, 흩날리기 위한 것인양.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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