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 이해인 수녀
꿈을 잃고 숨저간
어는 소녀의 넋이
다시 피여난것 일까
흙냄새 풍겨 오는
외로운 들길에
웃음일고 피여난
연보라빛 꽃
하늘만 밑고 사는 푸른마음속에
바람이 실어다 주는
꿈과 같은 얘기
멀고 먼 하늘나라 얘기
구름따라 날던
작은 새 한마리 찾아주면
타오르는 마음으로 노래를 엮어
사랑ㅇ의 기뿜에 젖어보는
자꾸 하늘을 닮고싶은 꽃
오늘은
어느 누구의 새하얀 마음을 울려 주엇나
또다시 바람이 일면
조금만 소망에
스스로 몸부림치는 꽃
봄 일기 -입춘에
이해인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그렇구나
그렇구나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 이해인 수녀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민들레의 영토 - 이해인 수녀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 이해인 수녀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아침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비 오는 날의 일기 - 이해인 수녀
너무 목이 말라 죽어가던
우리의 산하
부스럼난 논바닥에
부활의 아침처럼
오늘은 하얀 비가 내리네
어떠한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산에 들에
가슴에 꽂히는 비
얇디얇은 옷을 입어
부끄러워하는 단비
차갑지만 사랑스런 그 뺨에
입맞추고 싶네
우리도 오늘은
비가 되자
사랑 없어 거칠고
용서 못해 갈라진
사나운 눈길 거두고
이 세상 어디든지
한 방울의 기쁨으로
한 줄기의 웃음으로
순하게 녹아내리는
하얀 비, 고운 비
맑은 비가 되자
빨래를 하십시오 - 이해인 수녀
우울한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맑은 물이
소리내며 튕겨울리는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밝아진답니다.
애인이 그리운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물 속에 흔들리는
그의 얼굴이
자꾸만 웃을 거에요.
기도하기 힘든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몇 차례 빨래를 헹구어내는
기다림의 순간을 사랑하다 보면
저절로 기도가 된답니다.
누구를 용서하기 힘든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비누가 부서지며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마음은 문득 넓어지고
그래서 행복할 거에요.
사랑이 잊혀지면 어디로 가나 - G. A. 베케르 /스페인의 시인, 산문작가.
한숨은 공기라서 대기로 간다.
눈물은 물이라서 바다로 간다.
그렇다면
사랑이 잊혀지면 어디로 가나?
창 앞의 나팔꽃 넝쿨이
- G. A. 베케르
창 앞의 나팔꽃 넝쿨이 흔들림을 보시고
지나가는 바람이 한숨짓는다 의심하실 양이면
그 푸른 잎 뒤에 내가 숨어
한숨짓는 줄 알아주시오.
그대 뒤에서 무슨 소리 나직이 나며
그대 이름 멀리서 부른다 의심하실 양이면
좇아오는 그림자 속에 내가 있어
그대를 부른 걸로 생각하시오.
한밤중에 그대 가슴 이상하게도
산산이 흩어져 설레이고
불타는 입김을 입술에 느끼시거든
눈에는 안 보여도 그대 바로 곁에
내 입김이 서린다고 생각하시오.
그대 눈 푸르다 - G. A. 베케르
그대 눈 푸르다.
수줍은 웃음은
넓은 바다에
새벽별 비친 듯하다.
그대 눈 푸르다.
흘리는 눈물은
제비꽃 위에 앉은
이슬방울 같다.
그대 눈 푸르다.
반짝이는 슬기는
밤하늘에 떨어지는
유성처럼 화려하다.
서정 소곡집 - G. A. 베케르
그대의 눈동자에 세계를 하나
그대의 미소에 하늘을 하나
그대의 키스에는...... 어쩌나
그대의 키스에는 무엇을 주나
오늘 땅과 하늘이 내게 미소지었고
오늘 마음 한 구석에까지 태양이 찾아왔다
오늘 나는 그이를 보았고
그이는 나를 보았다
오늘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 시란 뭐죠? ......
그대의 파란 눈동자 내 눈에 빨려든다
그걸 왜 내게 묻노
시....... 바로 네가 시인걸
내 인생은 황야
손에 닿아 꽃잎이 떨어지고
슬픔의 씨를 뿌려 놓고는
나도 그것을 줍게 한다
'퀘렌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날 (0) | 2018.05.21 |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0) | 2018.05.21 |
이태백 장진주사 (0) | 2018.05.21 |
그대 있음에 김남조 (0) | 2018.05.21 |
천상병 시모음 (0) | 2018.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