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날

인천 주안 자동차 2018. 5. 21. 18:56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한 실존주의 시인.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Autumn Day)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Lord: it is time. The summer was immense.
Lay your long shadows on the sundials,
and on the meadows let the winds go free.

 Command the last fruits to be full;
give them just two more southern days,
urge them on to completion and chase
the last sweetness into the heavy wine.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막바지의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고
이틀만 더 남녘의 날들을 허락해 주십시오
영근 포도송이가 더 완숙하도록 이끄시어
마지막 단맛을 더하게 해 주십시오.


Who has no house now, will never build one.
Who is alone now, will long remain so,
will stay awake, read, write long letters
and will wander restlessly up and down
the tree-lines streets, when the leaves are drifting.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홀로 남아서
잠들지 않고, 글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져 뒹굴면
초조하게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옛집에서                                              / 릴케


 

옛집에서 내 앞에 휜히 트인

프라하를 한눈에 휘둘러본다

저아래쪽에는 황혼의 시간이

발소리 죽여 소리 없이 지나간다

 

간유리로 보듯 도시는 흐릇하다

아주 높이 투구를 쓴 거인처럼

내 눈앞에는 뚜렷이 니콜라스 교회의

푸른 녹청의 반구 천장이 솟아 있다

 

멀리 붐비는 도시는 소음 속에

벌써 여기저기 불빛이 깜박인다ㅡ

지금 옛집에 있자니 목소리 하나가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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