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인천 주안 자동차 2018. 5. 21. 19:05



      가을편지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ㅡ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세노야


                                                                                                                             /고은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청산별곡 (靑山別曲)


                                                                                          /고려가요


살어리 살어리랏다. 靑山(쳥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靑山(쳥산)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제1연> 


살고 싶구나, 살고 싶구나. 청산에 살고 싶구나.

머루랑 다래를 먹고 청산에서 살고 싶구나.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제2연> 


 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여. 자고 일어나 우는구나 새여.

너보다 근심이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울고 있노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제3연>


 날아가던 새를 본다. 날아가던 새를 번다. 물 아래 날아가던 새를 본다.

녹슨 연장을 가지고 물 아래로 날아가던 새를 본다.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제4연>


이럭저럭 하여 낮은 지내왔지만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찌할 것인가.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제5연>


어디에다 던지던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던 돌인가?

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 돌에 맞아서 울고 있노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제6연>


살고싶구나 살고싶구나. 바다에 살고싶구나.

나문재랑 굴조개랑 먹고 바다에 살고싶구나.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졍지 가다가 드로라.

사사미장대예 올아셔 奚琴(해금)을 혀거를 드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제7연>


가다가 가다가 듣노라. 외딴 부엌으로 가다가 듣노라.

사슴이 장대에 올라가서 해금을 타는 것을 듣노라.


  가다니 배 브른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

조롱곳 누로기 매와 잡사와니, 내 엇디 하리잇고.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제8연> 


 가더니 불룩한 독에 독한 술을 빚는구나.

조롱박꽃 같은 누룩 냄새가 매워 나를 붙잡으니 낸들 어찌하겠는가.





          送人                                                                          /고려시대 한시 鄭知常

 

 



雨 歇 長 堤 草 色 多 : 우헐장제초색다

送 君 南 浦 動 悲 :송군남포동비가

大 同 江 水 何 時 盡 :대동강수하시진

別 淚 年 年 添 綠 :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언덕에 풀빛이 짙은데,

임을 보내는 남포에는 슬픈 노래가 일어난다.

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 마를까?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위에 더하는 것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몸은 쉴 수가 있는데, 마음은 쉬지를 못하는구나,

마음은 쉬려하는데, 시계 바늘 위에서 마음이 째깍거리고 있구나, 째깍 거리는 것이 숙명이면 숙명이로구나, 평생을 째깍거렸구나, 좀 쉬고 싶은데, 흐르는 강물 속에서라도 한 백년 엉켜 있었으면

꿈속에 먹구름 엉켜있는 그 속에서라도 한 오백년이나 천년 그때쯤 꿈처럼 뒤엉켰으면

일년에 두 번 쉬었다 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쉬지 못했던 시간들이 속도(速度)처럼 머리 뒤켠으로 지나가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잠시 있다 가야지

잠시 잊고 있어야지,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어쩌면 내가 나에게, 나의 마음의 골짜기가 찾는 이가 없어 외로워 내 마음 한켠이라도 거기에 보내려는 것인지 모른다. 내 마음의 구렁텅이 어두운 낭떠러지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이 흘러가다 지친 그 골짜기를 더듬어 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골짜기에 묻힌 기억에 대한 호명(呼名)인지도 모른다. 그 무엇을 불러야 할지,

부르고 있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없는지 막연하기만 한 내 生涯에 대한 의문인지도 모른다,

네가 거기에 있니?

한 오백년 엉킨다는 것이,


한 오백년 어둠 속에 엉킨다는 것이, 어쩌면 휴게소에서 편지를 쓰고 있었던 그 때였는지도 모른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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